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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격언서/채근담

채근담 하5

by jiminchido 2025.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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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 하5

 

 

41

出世之道, 卽在涉世中, 不必絶人以逃世. 了心之功, 卽在盡心內, 不必絶欲以灰心.

출세지도, 즉재섭세중, 불필절인이도세. 요심지공, 즉재진심내, 불필절욕이회심.

세상을 벗어나는 길은 세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있으니, 사람들과 단절하여 세상을 피할 필요는 없고, 마음을 깨닫는 공은 마음을 다하는 데 있으니, 욕심을 끊어 마음을 재처럼 식힐 필요는 없습니다.

 

 

1. 出世之道, 卽在涉世中, 不必絶人以逃世 (출세지도, 즉재섭세중, 불필절인이도세)

세속에서 벗어나는 도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세상을 등지고 산속으로 숨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속에 참여하는 가운데에 있다고 말합니다. , 사람들과 인연을 끊고 세상을 피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진정한 도는 삶의 현실 속에서 부딪히고 경험하며 깨닫는 것이지, 도피적인 행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강조합니다. 세상과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초월하는 지혜를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2. 了心之功, 卽在盡心內, 不必絶欲以灰心 (요심지공, 즉재진심내, 불필절욕이회심)

마음을 깨닫는 공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바로 마음을 다하는 내부에 있다고 말합니다. 마음을 다한다는 것은 자신의 본분과 역할에 충실하며 성심성의껏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이지, 욕망을 끊어 마음을 재처럼 만들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회심(灰心)은 마음을 완전히 죽여 아무런 감각이나 욕망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이는 잘못된 금욕주의로 인해 삶의 활력과 본연의 마음마저 잃는 것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깨달음은 생명력을 잃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본성을 온전히 회복하는 데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진정한 도의 추구와 마음의 깨달음이 극단적인 은둔이나 금욕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내면을 성찰하는 데 있다는 대은의 사상을 역설하며, 진정한 도는 현실을 회피하거나 욕망을 억압하는 데 있지 않고, 세상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며, 마음의 본성을 충실히 발휘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42

此身常放在閒處, 榮辱得失, 誰能羞遣我? 此心常安在靜中, 是非利害, 誰能瞞眛我?

차신상방재한처, 영욕득실, 수능수견아? 차심상안재정중, 시비이해, 수능만매아?

이 몸을 항상 한가로운 곳에 두어 세속적인 영욕과 득실에 초연하면, 그 어떤 것도 나를 부끄럽게 하거나 내쫓을 수 없고, 이 마음을 항상 고요함 속에 두어 시비와 이해에 흔들리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나를 속이고 어둡게 할 수 없습니다.

 

 

1. 此身常放在閒處, 榮辱得失, 誰能羞遣我? (차신상방재한처, 영욕득실, 수능수견아?)

이 몸을 항상 한가로운 곳에 두면, 즉 세속적인 욕망과 경쟁에서 벗어나 여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유지하면, 영광과 치욕, 얻음과 잃음과 같은 외부의 평가와 결과가 그 누가 나를 부끄럽게 하고 내쫓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합니다. 이는 자신의 몸과 삶의 방식을 스스로 주도적으로 선택하여 세속적인 가치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외부의 어떠한 평가나 손실도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외부의 기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표현합니다.

 

2. 此心常安在靜中, 是非利害, 誰能瞞眛我? (차심상안재정중, 시비이해, 수능만매아?)

이 마음을 항상 고요함 속에 편안히 두면, 즉 내면의 평온을 유지하고 번뇌로부터 벗어나면, 옳고 그름, 이익과 손해와 같은 세속적인 판단 기준이나 이기적인 동기가 그 누가 나를 속이고 흐리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합니다. 마음이 고요하고 맑으면 세상의 복잡한 이해관계나 도덕적 판단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진실을 명료하게 보고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면의 명료함과 흔들림 없는 지혜를 강조합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육체와 마음을 한가롭고 고요한 상태에 두면, 외부의 어떠한 세속적 가치나 유혹도 자신을 흔들거나 오염시킬 수 없다는 내면의 자율성과 초연함을 강조하며, 육체와 마음을 평화롭고 고요하게 유지함으로써, 세속적인 영광, 치욕, 득실, 시비, 이해타산 등 그 어떤 외적 요소에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내면의 평온과 자유를 얻을 수 있음을 역설합니다.

 

 

 

 

43

竹籬下, 忽聞犬吠鷄鳴, 恍似雲中世界. 芸窓中, 雅聽蟬吟鴉噪, 方知靜裡乾坤.

죽리하, 홀문견폐계명, 황사운중세계. 운창중, 아청선음아조, 방지정리건곤.

대나무 울타리 아래에서 문득 개 짖는 소리와 닭 우는 소리를 들으니, 황홀하게 마치 구름 속 세상과 같고, 서재 창문 안에서 맑게 매미 울음소리와 까마귀 울음소리를 들으니, 비로소 고요함 속의 천지를 알 수 있습니다.

 

 

1. 竹籬下, 忽聞犬吠鷄鳴, 恍似雲中世界 (죽리하, 홀문견폐계명, 황사운중세계)

대나무 울타리 아래와 같이 소박하고 자연적인 공간에서 문득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시골의 소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소음이 황홀히 구름 속 세상 같다고 표현합니다. 구름 속 세상은 속세와 단절된 신비롭고 이상적인 경지를 의미합니다. , 일상의 소음 속에서도 마음을 열고 들으면, 그것이 오히려 세속을 초월한 듯한 신비로운 정취와 평화로움을 선사한다는 것입니다.

 

2. 芸窓中, 雅聽蟬吟鴉噪, 方知靜裡乾坤 (운창중, 아청선음아조, 방지정리건곤)

서재 창문 안에서 고상하게 매미 울음소리 까마귀 우는 소리를 듣는다고 말합니다. 운창(芸窓)은 선비의 서재를, 아청(雅聽)은 고상하게 감상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매미와 까마귀 소리는 시끄럽거나 불길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소음이지만, 이를 고상하게 듣는다는 것은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며 그 소음 속에서 자연의 이치와 생명력을 감상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듣고 나니 비로소 고요함 속에 천지가 있음을 안다고 합니다. 정리건곤(靜裡乾坤)은 외부의 소란함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고요함을 유지할 때 비로소 세상의 본질과 광활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일상의 소음과 평범한 풍경 속에서 진정한 고요함과 깨달음을 발견하는 역설적인 지혜를 보여줍니다. 외부의 소란함 속에서도 내면의 평화를 유지할 때 비로소 세상의 본질을 통찰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진정한 고요함과 깨달음이 외부의 소란함이 완전히 사라진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소음 속에서도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며 사물의 본질을 통찰할 때 비로소 발견된다는 심오한 지혜를 전달합니다.

 

 

 

 

44

我不希榮, 何憂乎利祿之香餌. 我不競進, 何畏乎仕官之危機.

아불희영, 하우호이녹지향이. 아불경진, 하외호사관지위기.

나는 영화를 바라지 않으니 이익과 녹봉의 향기로운 미끼를 걱정할 필요가 없고, 나아가 다투지 않으니 벼슬길의 위기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1. 我不希榮, 何憂乎利祿之香餌 (아불희영, 하우호이녹지향이)

나는 영예를 바라지 않는다고 단언합니다. 영예는 세상의 칭찬, 명성, 영광 등을 의미합니다. 영예를 추구하지 않으니 어찌 이익과 녹봉의 향기로운 미끼를 근심하겠는가라고 반문합니다. 이녹지향이(利祿之香餌)는 겉으로는 달콤하고 유혹적이지만, 실제로는 사람을 덫에 빠뜨리는 세속적인 이익과 명예를 비유합니다. 욕심이 없으면 유혹에 빠지거나 그로 인한 근심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2. 我不競進, 何畏乎仕官之危機 (아불경진, 하외호사관지위기)

나는 다투어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경진(競進)은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경쟁하고 출세하려 애쓰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경쟁심이 없으니 어찌 관직의 위기를 두려워하겠는가라고 반문합니다. 관직에 대한 욕심이 없으면 그 자리에서 오는 불안감, 권력 다툼, 실각의 위험 등 모든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세속적인 명예와 이익, 권력에 대한 욕심을 버리면, 그것들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근심과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무욕의 지혜를 강조하며, 세속적인 명예, 이익, 권력에 대한 욕심과 경쟁심을 버린다면, 그 모든 것으로 인해 파생되는 근심과 두려움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있음을 역설합니다.

 

 

 

 

45

徜徉於山林泉石之間, 而塵心漸息. 夷猶於詩書圖畵之內, 而俗氣漸消. 故君子雖不玩物喪志, 亦常借境調心.

상양어산림천석지간, 이진심점식. 이유어시서도화지내, 이속기점소. 고군자수불완물상지, 역상차경조심.

산림천석(山林泉石) 사이를 거닐면 속세의 마음이 점차 사라지고, 시서화(詩書畵) 속에서 노닐면 속된 기운이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물건에 빠져 뜻을 잃지는 않더라도, 항상 환경을 빌려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1. 徜徉於山林泉石之間, 而塵心漸息 (상양어산림천석지간, 이진심점식)

산림과 샘물, 바위 사이를 거닐다 보면, 속된 마음이 점차 가라앉는다고 말합니다. 상양(徜徉)은 한가로이 거니는 것을, 진심은 세속적인 번뇌, 욕심, 번잡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자연 속에서 여유롭게 거닐다 보면 복잡했던 마음이 점차 가라앉고 평화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2. 夷猶於詩書圖畵之內, 而俗氣漸消 (이유어시서도화지내, 이속기점소)

시와 서예, 그림의 세계를 거닐다 보면, 속된 기운이 점차 사라진다고 말합니다. 이유(夷猶)는 여기저기 배회하며 즐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 서예, 그림은 고상한 예술적 활동으로, 이러한 예술의 세계에 몰입하다 보면 속된 욕심이나 천박한 기운이 점차 사라지고 품격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3. 故君子雖不玩物喪志, 亦常借境調心 (고군자수불완물상지, 역상차경조심)

이러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저자는 그러므로 군자는 비록 물건을 가지고 놀다 뜻을 잃지는 않더라도, 또한 항상 환경을 빌려 마음을 조절한다고 결론 내립니다. 완물상지(玩物喪志)는 물건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본래의 뜻을 잃는 것을 경계하는 말입니다. 군자는 이러한 경계심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환경을 빌려 마음을 조절한다고 합니다. , 아름다운 자연과 고상한 예술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정신을 맑게 하는 데 활용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환경의 중요성을 인정하되, 집착하지 않고 현명하게 활용하는 중용의 지혜를 보여줍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자연과 예술을 가까이하며 마음을 수양하는 군자의 태도를 설명합니다. 직접적으로 집착하지 않더라도 좋은 환경을 통해 마음을 정화하고 다스리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군자가 자연과 예술을 단순한 유흥이 아닌 정신 수양의 도구로 삼아, 속된 마음을 정화하고 내면의 평화를 얻는 삶의 태도를 제시합니다.

 

 

 

 

46

春日氣象繁華, 令人心神駘蕩, 不若秋日雲白風淸. 蘭芳桂馥, 水天一色, 上下空明, 使人神骨俱淸也.

춘일기상번화, 영인심신태탕, 불약추일운백풍청. 난방계복, 수천일색, 상하공명, 사인신골구청야.

봄날의 화려하고 번잡한 기상은 사람의 심신을 해이하게 만드니, 가을날의 흰 구름과 맑은 바람만 못합니다. 난초는 향기롭고 계수나무는 향긋하며, 물과 하늘은 한 빛깔이고, 위아래가 텅 비고 밝으니, 사람의 정신과 골격을 모두 맑게 합니다.

 

 

1. 春日氣象繁華, 令人心神駘蕩 (춘일기상번화, 영인심신태탕)

봄날의 기상은 화려하여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방탕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봄은 만물이 소생하고 화려하게 피어나는 계절이지만, 그 화려함과 번잡함이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들뜨고 산만하게 하여 본연의 정신을 흐트러뜨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외적인 자극이 내면의 평화를 방해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2. 不若秋日雲白風淸, 蘭芳桂馥, 水天一色, 上下空明, 使人神骨俱淸也 (불약추일운백풍청, 난방계복, 수천일색, 상하공명, 사인신골구청야)

그러나 가을날의 흰 구름과 맑은 바람만 못하다고 말합니다. 가을은 화려함이 가라앉고 모든 것이 맑고 깨끗해지는 계절입니다. 난초의 향기, 계화의 향기는 은은하고 고상한 아름다움을, 물과 하늘이 한색을 이루고, 위아래가 텅 비어 맑은 것은 끝없이 맑고 투명하며 광활한 자연의 경지를 묘사합니다. 이러한 가을의 풍경은 사람으로 하여금 정신과 뼈대가 모두 맑아지게 한다고 합니다. 신골구청(神骨俱淸)은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감각까지도 맑고 투명해져 완전히 정화되고 승화되는 경지를 의미합니다. 이는 외적인 화려함이 아닌 내면의 고요함과 투명함이 가져다주는 진정한 정화를 강조합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화려하고 번잡한 것보다 소박하고 맑은 것에서 진정한 정신적 승화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청담의 미학을 강조합니다. 자연의 계절적 변화를 통해 정신적인 경지를 비유하며, 화려하고 자극적인 것으로부터 오는 순간적인 즐거움보다는, 소박하고 맑은 자연 속에서 얻는 은은하고 지속적인 정신적 평화와 정화가 더 큰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역설합니다.

 

 

 

 

47

一字不識, 而有詩意者, 得詩家眞趣. 一偈不參, 而有禪味者, 悟禪敎玄機.

일자불식, 이유시의자, 득시가진취. 일게불참, 이유선미자, 오선교현기.

글자 하나 알지 못해도 시의 뜻을 가진 자는 시인의 참된 흥취를 얻고, 게송(偈頌)하나 참구하지 않아도 선의 맛을 가진 자는 선교의 현묘한 기틀을 깨닫게 됩니다.

 

 

1. 一字不識, 而有詩意者, 得詩家眞趣 (일자불식, 이유시의자, 득시가진취)

한 글자도 알지 못해도, 즉 문맹이거나 문학적 지식이 없어도, 시의 정취를 아는 자는 시인의 진정한 묘미를 얻는다고 말합니다. 시의 정취는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삶의 깊이를 시적으로 느끼는 감수성을 의미합니다. 이는 형식적인 지식이 없어도 본연의 감수성과 직관으로 예술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2. 一偈不參, 而有禪味者, 悟禪敎玄機 (일게불참, 이유선미자, 오선교현기)

불교의 게송 한 구절도 참선하지 않아도, 즉 불교 경전을 공부하거나 형식적인 참선을 하지 않아도, 선의 맛을 아는 자는 선교의 현묘한 기틀을 깨닫는다고 말합니다. 선의 맛은 번뇌에서 벗어나 본연의 평온을 얻는 경험적 깨달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종교적인 형식이나 교리를 따르지 않아도, 직접적인 통찰과 체험을 통해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진정한 깨달음과 이해가 형식적인 지식이나 학습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감각과 통찰에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본연의 감수성과 직관적 깨달음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진정한 지혜와 깨달음, 그리고 예술적 감각은 형식적인 학습이나 지식의 축적을 넘어, 본연의 직관과 감수성, 그리고 직접적인 체험을 통해 얻어지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깨달음은 마음 안에 있다는 선적인 사유와 일치합니다.

 

 

 

 

48

機動的, 弓影疑爲蛇蝎, 寢石視爲伏虎, 此中渾是殺氣. 念息的, 石虎可作海鷗, 蛙聲可當鼓吹, 觸處俱是眞機.

기동적, 궁영의위사갈, 침석시위복호, 차중혼시살기. 염식적, 석호가작해구, 와성가당고취, 촉처구시진기.

기민하게 움직이는 자는 활 그림자를 뱀이나 전갈로 의심하고, 누워 있는 돌을 엎드린 호랑이로 보니, 이 속은 온통 살기뿐입니다. 생각을 쉬는 자는 돌 호랑이를 갈매기로 여기고, 개구리 소리를 고취로 여기니, 닿는 곳마다 모두 참된 기틀이 됩니다.

 

 

1. 機動的, 弓影疑爲蛇蝎, 寢石視爲伏虎, 此中渾是殺氣 (기동적, 궁영의위사갈, 침석시위복호, 차중혼시살기)

마음의 기틀이 움직이는 자는 활 그림자를 뱀이나 전갈로 의심하고, 누워 있는 돌을 엎드린 호랑이로 본다고 말합니다. 기동(機動)은 마음속에서 번뇌, 망상, 의심, 불안 등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보고도 두려움, 의심, 적대감으로 왜곡하여 인식하게 됩니다. 활 그림자가 뱀으로 보이고, 평범한 돌이 호랑이로 보이는 것은 마음의 불안과 망상이 외부 사물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현상을 비유합니다. 따라서 이 가운데 온통 살벌한 기운뿐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마음이 불안하면 세상 모든 것이 위협적이고 적대적으로 느껴진다는 의미입니다.

 

2. 念息的, 石虎可作海鷗, 蛙聲可當鼓吹, 觸處俱是眞機 (염식적, 석호가작해구, 와성가당고취, 촉처구시진기)

반대로 마음의 생각이 멈춘 자는 돌 호랑이도 바다 갈매기가 될 수 있고, 개구리 소리도 북과 피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염식(念息)은 마음속의 망상과 번뇌가 가라앉아 고요하고 평화로운 상태, 즉 무념의 경지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두려운 존재도 평화로운 존재로 보이고, 시끄러운 소음도 아름다운 음악으로 들립니다. 이는 마음이 고요하면 세상 모든 것을 긍정적이고 아름답게,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접촉하는 곳마다 모두 진정한 기틀이다라고 말합니다. 진기(眞機)는 사물의 본질, 즉 진리를 의미합니다. 마음이 맑으면 어떤 사물을 접하든 그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마음의 움직임이 세상을 어떻게 왜곡하여 인식하게 하는지를 보여주고, 반대로 마음의 고요함(무념무상)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아름답게 보게 하는 능력을 강조합니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일체유심조의 철학을 극명하게 드러나며,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 마음의 상태에 전적으로 달려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번뇌와 망상이 가득한 마음은 세상을 왜곡하고 두려움을 느끼게 하지만,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은 세상 모든 것에서 진리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음을 역설합니다.

 

 

 

 

49

身如不繫之舟, 一任流行坎止. 心似旣灰之木, 何妨刀割香塗.

신여불계지주, 일임유행감지. 심사기회지목, 하방도할향도.

몸은 매이지 않은 배와 같으니 흐름에 맡겨 막히거나 멈추는 것을 상관하지 않고, 마음은 이미 재가 된 나무와 같으니 칼로 베거나 향을 칠하는 것을 어찌 거리끼겠습니까!!!

 

 

1. 身如不繫之舟, 一任流行坎止 (신여불계지주, 일임유행감지)

몸은 매이지 않은 배와 같다고 말합니다. 매이지 않은 배는 어떤 곳에도 묶여 있지 않아 자유롭게 움직이는 배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배는 흐르는 대로 맡기고 웅덩이에 멈추는 대로 내버려 둔다고 합니다. 유행감지(流行坎止)는 물이 흐르는 대로 가다가 웅덩이를 만나면 멈추듯이, 자연의 흐름과 운명에 순응하여 어떠한 저항이나 인위적인 노력 없이 살아가는 태도를 비유합니다. 이는 육체적인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주어진 상황에 유유자적하며 순응하는 경지를 나타냅니다.

 

2. 心似旣灰之木, 何妨刀割香塗 (심사기회지목, 하방도할향도)

마음은 이미 식은 재와 같은 나무 같다고 말합니다. 기회지목(旣灰之木)은 불에 타서 재가 된 나무처럼, 모든 번뇌와 감정이 사라져 철저하게 고요하고 무감각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마음은 칼로 베거나 향수를 바르더라도 어떠하겠는가라고 반문합니다. 칼로 베는 것은 고통이나 해악을, 향수를 바르는 것은 쾌락이나 유혹을 상징하는데, 마음이 이미 재처럼 되어 아무런 감각이 없으므로 어떠한 외부 자극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생사, 고통, 쾌락 등 모든 이분법적인 것들을 초월하여 완전히 자유로워진 절대적 평온의 경지를 표현합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외부의 어떤 환경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육체적, 정신적 자유와 초연함을 강조합니다. 도가와 선 사상의 핵심인 무위자연과 절대적 자유의 경지를 표현하며, 육체적으로는 자연의 순리에 맡기고, 정신적으로는 모든 번뇌와 감정에서 벗어나 어떠한 외부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는 지극한 자유와 평화로운 경지를 이상적인 삶의 태도로 제시합니다.

 

 

 

 

50

人情, 聽鶯啼則喜, 聞蛙鳴則厭. 見花則思培之, 遇草則欲去之, 但是以形氣. 若以性天視之, 何者非自鳴其天機, 非自暢其生意也?

인정, 청앵제즉희, 문와명즉염. 견화즉사배지, 우초즉욕거지, 단시이형기. 약이성천시지, 하자비자명기천기, 비자창기생의야?

인간의 감정은 꾀꼬리 우는 소리를 들으면 기뻐하고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들으면 싫어하며, 꽃을 보면 가꾸고 싶어 하고, 풀을 보면 제거하고 싶어 하니, 이는 오로지 외형에 따른 감정 때문입니다. 만약 본성으로 본다면, 어찌 스스로 천기를 울리지 않고, 스스로 생의를 펼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1. 人情, 聽鶯啼則喜, 聞蛙鳴則厭 (인정, 청앵제즉희, 문와명즉염)

사람의 정은 꾀꼬리 우는 소리를 들으면 기뻐하고, 개구리 우는 소리를 들으면 싫어한다고 말합니다. 꾀꼬리 소리는 아름답고 듣기 좋다고 여기고, 개구리 소리는 시끄럽거나 불쾌하다고 여기는 인간의 주관적이고 편파적인 감정을 보여줍니다.

 

2. 見花則思培之, 遇草則欲去之, 但是以形氣 (견화즉사배지, 우초즉욕거지, 단시이형기)

꽃을 보면 키우려 하고, 풀을 만나면 제거하려 한다고 말합니다. 꽃은 아름답다고 여겨 소중히 가꾸려 하고, 잡초는 쓸모없다고 여겨 뽑아버리려 하는 인간의 자의적인 판단과 개입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이러한 모든 행위가 다만 형체와 기운으로 판단하는 것일 뿐이다라고 지적합니다. 형기(形氣)는 겉으로 드러나는 외형이나 순간적인 감각, 기분을 의미하며,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피상적인 관점임을 비판합니다.

 

3. 若以性天視之, 何者非自鳴其天機, 非自暢其生意也? (약이성천시지, 하자비자명기천기, 비자창기생의야?)

그러나 만약 본성으로 본다면, 즉 편견 없이 사물의 본질과 우주의 이치에 따라 본다면, 어느 것이 스스로 그 타고난 기틀을 울리지 않으며, 어느 것이 스스로 그 생명의 뜻을 펼치지 않는 것이 있겠는가라고 반문합니다. 성천(性天)은 모든 사물에 내재된 본래의 성품과 자연의 이치를 의미합니다. 천기는 자연의 오묘한 기틀, 생명의 본질을, 생의(生意)는 생명력과 삶의 의지를 의미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꾀꼬리 소리나 개구리 소리, 꽃이나 풀 그 어느 것도 좋고 나쁨이 없이 각자 자신의 본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존재하며 생명력을 발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론

결론적으로 이 구절은 사람들이 사물을 외적인 형상과 기분에 따라 좋고 싫음을 판단하는 편협함을 지적하고, 만물에 내재된 본질적인 생명력과 진리를 통찰하는 성천의 관점을 강조합니다. 이는 만물제동의 장자 사상과 맥락을 같이하며, 사람들이 사물을 피상적인 감각과 주관적인 편견으로 판단하는 것을 경계하고, 모든 만물이 각자의 본성대로 존재하며 생명력을 펼치고 있음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넓고 깊은 통찰력을 가져야 함을 역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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